훌쩍.. 行

북경 둘째 날.. 천안문 자금성

보현섬 2015. 9. 10. 11:00

 

하룻밤을 지냈고 오늘은 북경투어 하는 날

왕징 뚜레쥬르 앞에서 집결한다는 사전 약속이 있었기에 

지하철 계단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락내리락 세 번의 역을 번갈아 갈아타고도 약속 시간 안에 도착하기 어려웠다

 

걸어서 5분 거리 라는데 워낙 넓은 땅떵이다 보니  말로야 5분이지 거리 개념이 당최 감이 잡히지 않아

걷기를 포기 일명 툭툭이라 불리우는 오토바이차량을 이용하기로.. 셋이 나란히 올라서 약속 장소로 달려~~~

 

시간 안에 도착 못하면 기다리지 않는다는 예약 당시 문구를 익힌 터라 거금을 들인 투어일정인데 이 노릇을 어째

"약속 장소 다와갑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연신 날리는 문자

천신만고 끝에 당도하니 우리 때문에 삼십 분씩이나 투어일정 시간이 늦춰진단다.. 쏘리쏘리 쏘쏘리

 

 

멀리로 시진핑 주석 사진이 걸린 천안문광장

얼마전 개최된 열병식을 떠올리며..

천안문 광장은 넓기도 하거니와 각종 인종들로 북적거린다

 

 

천안문사태 - 1989년 민주화를 요구하던 학생·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한 사건
급진 개혁주의자였던 후야오방의 사망으로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확산되면서

 1989년 전국의 대학생들과 시민 중심의 민주화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이에 국무원 총리 리펑은 베이징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천안문 광장에서

시위 군중을 무력으로 진압하여 만 오천명 이상의 사상자를 낳는 유혈사태를 일으켰다

 

 

단체 여행객들의 이탈 방지를 위한 모자 행렬

어느 나라에서나 여행자들의 행동 양식은 비슷비슷^^

 

 

1945년 중화민국이 베트남의 북부를 침공하고 북위 16도선을

기준으로 이북을 점령한 사건 - 나무위키에서 펌 -

역사적으로 길이 남길만한 사건인가 보다 저렇게 숫자를 내건 것을 보니

자국인에게는 영광인지 모르겠으나 이방인의 눈에는 침략으로만 뵈더라는

 

 

소수민족이 많은 중국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던 복장..

 

 

열두 문을 거쳐야 왕실에 들 수 있었다는? 가이드의 말은 귓등으로,

 워낙 많은 관광객들로 빨리빨리가 통하지 않던 곳 

 느릿한 행렬에 자연히 걸음도 느릿해지던..

 

 

자금성 - 중국 베이징(北京)에 있는 명나라, 청나라 때의 궁성.

현존하는 중국 최대 규모의 옛 건축물로, 명나라의 영락제(永樂帝)가 축조하였다.

 현재 고궁 박물원(故宮博物院)으로 바뀌어 국가 중요 보호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중국어 ‘Zijincheng [紫禁城]’을 우리 한자음으로 읽은 이름이다.

 

 

자금성을 둘러보는 내내 눈에 뜨이던 군인들

높으신 누군가가 오신다는데.. 누가 오시냐고 가이드가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해주더란다

 

 

골목이라기보가 회랑 같은 느낌의 길을 한참을 걷는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이곳에서 내시와 궁녀들이 이러쿵저러쿵 하던 곳이라고.. 믿거나 말거나

 

 

 

 

자금성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을 향해 오른다

1문에 올라 보니 지붕만 보이길래 더사 계단을 오르기를.. 2문에서도 엮시나 성에 안 차

제3문까지 오르고 보니 눈앞이 어질어질 다리가 후들후들

 

 

아! 자금성.. 어찌나 광범위한지.. 보는 내내 다물어지지 않는 입.. ㅎ

개미처럼 보이는 사람 사람들..

 

 

 

 

 

 

 

 

 

 

왼쪽에서 오른쪽까지 대략 담아 보다

 

 

자금성에서 만나진 길고양이.. 눈동자 색깔이 하도 예쁘길래 요리조리 옮기며

정면포즈를 취하길 기다렸으나 도도하기 이를 데 없기를..

 

 

 

 

 

 

천자가 지닐 수 있는 유일의 구천구백구십구 칸..

최대 규모의 왕실 건축물 위용을 뽐내던 자금성을 속속들이 보려면 며칠은 걸려야 할 듯싶었다

우리나라 궁궐 규모도 자금성에 못지않았는데 일본강정기 때 반토막을 내버렸다는 설이 있고 보면......

건축물 위용으로야 자금성이 낳을지 몰라도 건축물의 예술성만큼은 우리나라가 월등하지 싶어 뵈더라는

얄팍하게나마.. 국수주의에까지.. 들썩이는 건 아닐지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