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 行

봉화 축서사를 다녀오면서..

보현섬 2017. 4. 6. 20:36











우리가 도착한 시간 스님들도 축서사를 방문 하신듯

 많은 스님들이 도량을 둘러 보시고 계셨다



축서(鷲棲)는 독수리가 산다는 뜻으로 독수리를 지혜를 뜻한다.

 불교에서 지혜를 상징하는 것은 문수보살이어서 축서사가 있는 산 이름을 문수산이라고 부른다.

의상대사가 문수산에 1000년 이상의 생명을 가진 축서사를 창건했다고 전해짐



코끝이 쨍하니 신선하던 공기와

피어 오르고 내려 앉던 산안개가 운치를 더해주고..



개울가로 몇년은 묵었음직한 왕버들이 꽃처럼 화사하게 피어있다



쉬고 쉬고 또 쉬고.. 청정한 공기와 노란 산수유가 반겨주던..



대웅전으로 들기전 바라본..








왼쪽 문 오른쪽 문 어느 한 분의 신도님의 불성을 놓칠까..

큰스님의 법문을 신도님들의 신발도 함께 경청하는..



대웅전과 보광전을 나란히..

법문을 듣다 말고 나오신 신도 한 분인 듯.. 손전화기로 열심히 통화중..


축서사는 영주 부석사와 형제 절로 불린다.

의상대사가 673년에 축서사를 창건한 뒤 3년 뒤 부석사를 창건했기 때문이다.




오층석탑은2005년에 세워졌고
탑 안에는 미얀마의 박물관에서 기증 받은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들어 있다고..



대웅전 정면에서 바라본.. 석탑은 후면인셈..





서로의 어깨를 겹치거나.. 걸치고 뻗어 나가던 산 산 산..

묵향을 친듯이 가깝게 아련하게 농담이 좋던.. 








축서사는 전화를 많이 입어 보광전을 제외한 다른 도량들은 화재로 소실됐던 것을 최근에 중창했다고 한다







보물 제 995호

문수산(文殊山) 정상 가까이에 자리잡은 축서사에 모셔져 있지만, 원래부터 이곳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불상의 높이는 1.08m이며, 얼굴은 가는 눈, 꼭 다문 입, 반듯하고 넓은 신체에서 고요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에는 주름이 평행 계단식으로 표현되어 다소 형식화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무릎 사이의 부채꼴 모양으로 넓게 퍼진 주름은 다른 불상들의 U자형과는 달리 물결무늬로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는 평행 계단식 옷주름과 함께 9세기 후반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대좌(臺座)는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한 8각으로 상·중·하대를 모두 갖추고 있다.

하대에는 각 면에 사자 1구씩을 새겼고, 중대에는 손을 모으고 있는 인물상을,

상대에는 꽃무늬를 새겨 넣었다. 현재 불상 뒤에 나무로 만들어진 광배(光背)가 있는데

여기에는 화려한 꽃무늬와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것은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고, 원래의 돌로 만든 광배는 윗부분만 남아있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 후기에 많이 만들어졌던 비로자나불상 가운데 하나로

대구 동화사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244호)과 동일한 특징을 보여주어

당시 조각수법과 신앙형태를 알 수 있다. 석탑기에 의해 9세기 후반에 만들었다는

절대연대가 밝혀져 통일신라 후기의 불상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위키백과에서 펌-







보광전 석축과 나무는 저들 홀로 늦가을 분위기에 젖어 있고..



스치듯 마주치듯.. 이도 억겹을 통해 만나진 인연이라.. 성불하소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한참을 그렇게 서 계시던 스님..



발길 가는데로 눈길 머무는데로..






대웅전 꽃살무늬들이 칸칸이 다양하다 그 중 한곳을..



먹장 하늘에 먹빛 풍경이..



그 옛날 사용되던 당간지주 라는데

크기가 너무 작아서 어찌 탱화를 걸었을까 싶어 뵈던..






보광전에서 보던 대웅전을..



얼음 땡.. 들어 가지 못하고 돌아 서야 했던..

삼층석탑은 상부만 담은..



선방(禪房) 앞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으로, 원래는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이 놓여 있었을 것이나 지금은 아래층 기단의 일부와 탑신의 2층 지붕돌 이상을 잃어버린 상태이다.

위층 기단은 각 면마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을 본 뜬 조각을 두었으며,

탑신의 1층 몸돌을 괴는 곳에 얕은 받침을 새겨 놓았다.

 2층 몸돌까지만 남아있는 탑신은 1층 몸돌만 따로 만들었고 1층 지붕돌과 2층 몸돌은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단에서와 같은 기둥 모양의 조각이 있고,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새겼다. 2 층몸돌 위에 놓인 길쭉한 석재는 그 용도를 알 수 없다.

탑신의 2층 몸돌이 1층에 비해 급격히 줄어들긴 하였으나 단정한 자태를 잃지 않고 있다.

탑 안에서 통일신라 경문왕 7년(867)에 만든 사리그릇이 발견되어 이 시기의 작품임을 알게 되었다고..



점심공양으로 먹은 산채 비빔밤을 끝으로..









법문을 들어야 할 시간에 건달 신자인 내는

혼자는 열심으로 발품팔아 다녀 보았지만 오늘도 역시나 走

괘불탱화도 보고 싶었지만 행사시에만 내어 놓는다고..


이그 카메라를 들고 올것을.. 마음 따로 몸 따로..

폰하나로 가볍게 다니자고 하면서도

 맘에 드는 그림을 마주 할 때면 주제도 모르고 늘 후회타령이다


내려 놓을 것은 내려 놓아야지 ㅉ

선승의 도량으로 으뜸으로 친다는 축서사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차를 파는 곳이 없었고 사방 어느 곳으로든 풍광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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