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고기를 잡으러 갔을 어부가 돌아 올 무렵 시작된 방생
방생을 마친 불자는 무슨 소원을 간절히 빌고 있을지
방생한 미꾸라지가 활발히 움직이는 것을 보며 자리를 떴다
성지순례길은 경상도 함양 영각사 용추사로..
첫 성지순례지 함양 영각사..
눈길을 사로잡던 커다란 돌배나무.. 가지마다 겨우살이들이..
타 사찰에서 보던 것과 판이한 사천왕탱..
멀리서 보이던 하얀꽃을 하늘 높이 치켜메단 꽃이 무엇인고
돌배나무란다 수령이 몇년이나 되었을까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이다.
876년(헌강왕 2)심광대사(深光大師)가 창건하였는데,
심광대사는 신라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선주산문(聖住山門)의 개산조인 무염(無染, 801∼888)의 제자로
신라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성주사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聖住寺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에는 ‘心光(심광)’이라고 되어 있다.
창건 뒤의 역사는 거의 전래되지 않고 있다. 다만,
1770년(영조 46)에 상언(尙彦)이 『화엄경』 판목(板木)을 새겨서 이 절에 장경각(藏經閣)을 짓고 봉안하였다.
또한, 상언은 이 절에 머물면서 절을 옮기지 않으면 수재(水災)에 의하여 무너지게 되리라고 예언하였는데,
얼마 뒤 홍수가 나서 절이 무너졌다고 한다.
1907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강용월(姜龍月)이 중창하였고, 한때 많은 불제자들의 수행처로 이용되었다.
6·25 때 다시 소실되면서 법당 내에 보존되어오던 화엄경판까지 소실되었다.
그 뒤 1959년에 국고보조를 얻어 해운이 법당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신 화엄전(華嚴殿)과 산신각·요사채 등이 있다.
사찰에 들릴 때 마다 꽃살무늬에 빠진다
좌우 양측 무느가 같음에 왼쪽과 중앙만 담으며
계단 오르기가 수월치 않은 어르신들은 주지 스님의 설법을 듣겠다고
엎드리다 싶이 해서라고 오르신다 이들의 불심이 진심이 아닌가 하고..
가장 깨끗한 양말.. 나들이에 맞춤한 옷을 입고
먼길을 오신 할머니의 기도가 경건해 뵈고..
신발들도 스님의 설법에 귀기울이는 시간..
중국과 일본 건축 양식이 혼합된 듯한 느낌은 개인적인 견해일터
구광루에 대한 참고 문헌이 없음으로 건축물만 샅샅이 둘러볼뿐으로..
창문 형태가 중국식 문양을 떠올리게 하더라는..
돋을새김한 연화무늬가 나름 우아하고..
밖과 안에서 담아본 구광루 연화무늬
찻집으로 운영되기도 했다는 구광루 2층 내부
구광루에서 빼앗긴 시간 반을 할애 했더라면
좀더 많은 곳을 둘러 보았으리.. 하얀 꽃을 가득 이고 섯는 돌배 나무와 구광루를 마지막으로
삼성각은 먼 발치에서만..
함양 영각사 삼성각에 봉안되어 있었던 이 山神幀은 현재 사측에서 별도 보관 중이다. 絹의 틈이 넓은 명주를 바탕재료로 하여 액자 형태로 제작되어 있는 이 탱화의 화면에는 산신이 호랑이 등에 타고 앉아있는 모습을 그려져 있으며, 뒷면에는 朱書된 全身舍利寶篋多羅尼가 있고, 다시 그 아래쪽에는 墨書된 銘文이 附記되어 있다. 그리고 이 산신탱은 조성 당시에 화면을 액자틀에서 조금 비스듬히 구획하였던 것이 후대로 오면서 틀의 뒤틀림과 함께 화면이 향좌측으로 조금 더 비틀어져 있기도 하다. 또한 제작된 지 오랜 세월의 경과와 관리소홀로 인하여 화면 하단 호랑이 부분과 상단 향우측 구름 부분의 견이 박락되어 있으며, 화면 상부에는 그을음과 함께 채색의 변색이 진행된 상태이다.
전체적인 구도는 화면의 절반가량의 크기로 묘사한 호랑이와 그 호랑이를 타고 앉은 산신을 화면 중앙에 큼지막하게 배치한 후 화면 하단 향좌측에 검을 짚고 서 있는 신장상과 산신 뒤편 두 동자를 작게 포치한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향우측으로 시선을 둔 3/4 정면관에 백발이 성성한 산신은 상투관을 쓰고 흰 수염을 휘날리며 가슴을 드러낸 채 양 다리를 호랑이 등 위에 두고 타고 있는 모습이다. 또한 오른손은 가슴 부위까지 들어 지팡이를 쥐고 있으며 지팡이의 끝에는 拂塵과 經卷을 묶어서 달아두고 있고, 왼손은 아래로 내려 芭蕉扇을 쥐고 있는 형태이다.
산신을 등에 태우고 버티고 서있는 호랑이는 왕방울 같은 큰 눈과 입을 약간 벌려 이빨을 드러낸 모습에 표범 무늬와 S자 형태로 치켜든 꼬리 등에서 마치 민화 속에 나오는 호랑이처럼 정감있게 묘사되어 있다. 더욱이 화면 하단 향좌측 모서리에 검을 짚고 떡하니 버티어 서있는 신장이 묘사되어 있어 아주 독특한 산신탱이기도 하다. 그리고 산신 후면 양쪽에는 공양물을 받쳐 든 천동자 · 천동녀가 묘사되어 있으며, 화면 후면에는 아무런 배경묘사 없이 여백으로 비워두고 있는데 화면 상단 가장자리를 따라 적 · 녹 · 황색으로 채색된 구름과 화면 상단 향우측 구름 사이로 소나무 일부가 그려져 있다.
설채는 적색과 녹색을 위주로 하여 황토색과 삼청색 등으로 채색되어 있는데 산신의 옷은 적색으로 하고, 전답은 녹색으로 채색하였으며 옷의 문양은 군데군데 네모난 금박으로 처리되어 있다. 호랑이의 채색은 황토색으로 바탕칠을 하고 그 가장자리 등에 흰색으로 바림질한 후 짧고 가는 먹선으로 털을 촘촘히 묘사하고 있다.
화면 하단 중앙에 주색바탕으로 마련된 화기란에는 이 산신탱이 道光十一年 辛卯三月日에 조성하여 봉안한 것과 畵師가 天如임을 밝히고 있다. 또한 이 탱화의 뒷면에 附記되어 있는 명문에서는 이 산신탱이 方丈山 瑞眞庵 後佛幀 조성과 袈裟佛事 중에 조성하여 德裕山 灵覺寺의 山神閣에 봉안한 것임을 더욱 자세히 밝히고 있다. 天如는 19세기 초 · 중반에 전라도 선암사에서 활동한 화사로 수작의 불화를 많이 남기고 있는데, 특히 천여가 1847년에 제작한 선암사 산신탱은 영각사 산신탱과 유사하며 더욱 해학적이고 회화성이 있게 수묵적으로 그려져 있기도 하다.
경상남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산신탱으로는 문화재자료 제243호인 산청 정취암 산신탱화와 제411호 남해 용문사 산신탱이 있는데, 특히 1833년에 제작된 정취암 산신탱화 역시 이 산신탱처럼 호랑이를 타고 있는 산신이 묘사되어 있다. 다만 이 영각사 산신탱의 조성연대가 2년 더 빠를 뿐만 아니라 필력과 안료 및 채색 등에서 한 단계 위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방생과 성지순례.. 함양 영각사 용추사
..혼자 나선 길이 아님에서 오는 아쉬움이 많은 여행이었다
나선 길에 엉뚱한 것에 꽂혀 보아야 할 곳은 놓치고 오기 일쑤지만
오늘은 돌배나무와 구광루에 발목이 잡혀 부도와
영각사 산성각 탱화를 놓치고 말았다 다음이라는 기회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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